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를 둘러싸고 반도체 업계 전반이 술렁이고 있다.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고, 핵심 장비 공급사인 ASML과는 가격 인상을 둘러싼 갈등까지 불거졌다.
이날 하락을 주도한 것은 반도체 업종이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4.29% 급락했고 SK하이닉스 ADR은 13.69% 폭락했다.
마이크론과 AMD, 브로드컴, 인텔 등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으며 엔비디아 역시 2.40% 떨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조정의 출발점은 TSMC였다. TSMC는 2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77% 늘어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놨지만, 올해 설비투자(CAPEX) 전망치를 기존 520억~560억 달러에서 600억~640억 달러로 대폭 상향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AI 수요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하는 시각과, 투자 부담 확대에 따른 향후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동시에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TSMC는 핵심 장비 공급사인 ASML과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디인포메이션 보도에 따르면 ASML이 극자외선(EUV)과 심자외선(DUV) 리소그래피 가격을 인상하려 하자 TSMC가 반발하고 나섰다.
로저 다센 ASML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가격 인상을 위한 여지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리소그래피는 반도체 웨이퍼에 빛을 쬐어 회로를 그려 넣는 노광 장비로, AI 프로세서와 메모리 제조 공정에 필수적이다.
고도의 기술력과 대당 수천억 원에 달하는 높은 진입장벽 탓에 사실상 ASML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 EUV는 더 짧은 파장으로 최첨단 미세 공정에 쓰이는 반면, DUV는 이보다 넓은 회로 선폭이나 자동차·가전용 반도체에 범용적으로 사용된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EUV를 확보할 수 없는 중국 입장에서는 DUV마저 잃으면 공정이 멈추기 때문이다.
반면 파운드리 시장의 73%를 차지하는 TSMC는 가격 인상에 저항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애플 등 주요 빅테크의 칩 생산을 맡고 있는 만큼 타격이 클 수밖에 없고, 첨단 패키징 기술인 '칩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에 DUV가 중요하게 쓰이는 점도 부담이다.
수출 규제를 받는 중국과 달리 TSMC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갖고 있어 독점 공급사에 맞설 여지가 있다.
ASML은 인텔이 최신 고개구율(High NA) EUV로 1.8나노급 공정 생산에 나설 예정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TSMC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대당 4억 달러(약 5940억 원)를 훌쩍 넘어 표준 EUV의 2배에 달하는 이 장비를, 경쟁사인 인텔은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면서까지 도입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AI 개발 붐에 따른 반도체 공급난은 ASML의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ASML은 2분기 매출이 93억2600만 유로(약 15조8600억 원)로 전 분기 대비 6.4% 늘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LSEG 전망치인 88억 유로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신규 노광장비 판매량은 86대로 전 분기(67대)보다 크게 늘었고, 순이익도 시장 전망을 웃돌았다.
올해 연간 매출 전망치는 430억~450억 유로로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제시했던 360억~400억 유로보다 상향됐다.
ASML은 저개구율(Low NA) EUV 생산능력을 내년 30% 늘리고 2028년 추가로 30% 확대하는 방안을, DUV 액침 노광장비 생산능력 역시 같은 속도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TSMC發 설비투자 확대와 ASML의 가격 인상 시도는 결국 AI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파운드리 공급망 전반의 비용 구조를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수요 확대가 파운드리와 장비 업체 모두에 실적 호재로 작용하는 동시에, 늘어나는 투자 부담과 가격 협상력을 둘러싼 갈등이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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